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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가 있었기에 예일대 320년 전통도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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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1-09-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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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선각자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고등교육이라는 개념조차 불분명했던 1970년대 한국의 한 기업인은 머지않아 한국의 인재들이 세계 최고 대학에 진학해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날이 올 것을 믿었다. 그런 신념 아래 그 기업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평생 대한민국의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 선각자는 바로 26일로 타계한 지 23주기가 되는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다. 최종현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한국 학생들이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의 신념은 현실이 됐고 지금은 한국 학자들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필자 또한 재단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예일대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이자 예일대 320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학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재단 커뮤니티 일원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영광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유학생 선발부터 깊은 인상을 줬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 성적이 좋지 않아 합격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단은 유학생을 선정하면서 당시 한국 사회가 강조하던 학점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미국 대학들은 박사 과정을 선발할 때 일반적으로 학점보다는 연구잠재력과 교수추천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지과학 및 신경과학 분야 최고의 대학원인 MIT와 스탠퍼드대에 합격했다. 만약 재단이 미래의 가능성이나 잠재력보다 단순히 한국 대학에서 누가 잘했느냐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필자는 유학생으로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마음껏 학업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재단이 설립된 1974년만 해도 한국 대학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 유수의 대학으로선 세계 각국의 대학생 중 어느 나라 학생을 우선 선발할지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학생이 거액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단은 한국 대학생들에게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 유수의 대학들에 강력하게 보증했다. 필자가 미국 명문 대학원에서 출발해 나중에 예일대 320년 역사상 ‘첫 아시아인 학장’이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재단 덕분이다.


재단 장학생 출신들은 한국 대학 등에서 제자들을 지도해 더 훌륭한 학자로 만들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자는 재단의 장학제도가 먼 미래를 바라본 최종현 회장의 뛰어난 경영 전략,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번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의 대학들이 재단 덕분에 연구와 학문 탐구를 위한 글로벌 기관으로 성장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했다고 본다. 재단이 한국의 학자들에게 주는 기회는 과학, 공학, 기술, 사회과학, 인문 분야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현명하고 효과적인 활동이라고 믿는다. 최종현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지는 재단에 남아 우리의 공동체를 지속해서 발전시키고, 사회환원을 하고 있으며, 한국을 국제적 리더로 만드는 중추적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맡고 있다.